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자유시 참변 (문단 편집) === 상해파 사할린부대의 전쟁범죄에 의한 현지인과의 갈등 === 그런데 갈등의 소지는 상해파와 이르쿠츠크파 사이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무장독립군은 현지에서 [[식량]]을 조달하려고 했는데 현지 [[극동 공화국]] 농민들은 협조할 의사가 없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데 현지 농민들에겐 무장독립군을 위해 식량을 바쳐야 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할린 부대]]의 중심인 니항 부대(니콜라옙스크 부대)는 이미 [[니콜라옙스크 사건]]이라는 대량학살과 폭력으로 유명했다. [[사할린 부대]]는 현지 농민들의 식량을 강제로 징발했다. 마자노프에서 독립군의 폭동과 약탈이 벌어지기도 했다. 독립군들은 식량과 물자 조달을 위해 [[극동 공화국]] [[농민]]들에게 약탈과 폭력을 일삼았고 이로 인해 극동 지역 농민과의 대립이 극에 치달았다. [[극동 공화국]] 지역의 농민들은 자신들을 약탈해가는 무장 독립군에게 분노하며 현지 간부들에게 호소와 항의를 했고 분위기는 점점 심각해져서 [[독립군]]과 '''현지 [[극동 공화국]] 농민 사이의 전면적 무장충돌 직전까지 가는 상황이 되었다.''' 아래 논문은 [[에펨코리아]], [[부흥카페]] 어느 이용자가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시베리아지부 역사연구소 선임연구원인 알렉세이 게오르기예비치 테플랴코프의 논문을 번역업체에 의뢰해 얻어난 번역물이다.[* "허락을 일일이 받을 필요 없이 출처 링크만 건다면 얼마든지 퍼가도" 된다고 의뢰 당사자가 허락했다. [[https://www.fmkorea.com/index.php?mid=best&document_srl=3008795647|펨코 2020.07.28 18:49 댓글]], [[https://cafe.naver.com/booheong/196297|부흥카페 2020.07.28. 05:50 댓글]] 그러나 번역물을 의뢰했던 이용자는 전제를 달았는데 반드시 링크의 출처를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번역을 의뢰했던 업체에 대한 번역 표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논문을 퍼갈 시에는 반드시 링크를 출처로 가져가야 한다.] 알렉세이 게오르기예비치 테플랴코프가 작성한 논문은 [[네스토르 칼란다리시빌리]]의 범죄 행위에 대한 논문으로 연구의 주제가 된 인물은 '''자유시 참변을 지휘한 당사자'''이므로 자유시 참변(아무르 학살)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주제다. >곧이어 칼란다리시빌리는 특히 심했던 국제 갈등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1920년 가을, 일본의 식민지개척자들과 전투를 벌였던 4 천여명의 한인 유격대원들이 '''북만주에서 아무르주로 넘어갈 무렵''', 코민테른 극동사무국장 슈먀츠키는 이르쿠츠크에서 조선혁명군을 훈련하고, 만주를 통해 시베리아에서 한국으로 향하는 전승 행군을 조직하는 모험적인 계획을 완성했다. 그는 칼란다리시빌리의 지휘 하에 조선혁명운동의 거점을 이르쿠츠크에 구축하는데 착수했다. 러시아로 건너온 폭동의 한인 상당수는 이르쿠츠크로, 나머지는 '''상해 혁명파'''로 방향을 잡았다. 반면, '''사할린 유격부대의 다른 경향을 갖는 '상해파' 유격대 지도자들은 아나키스트 트랴피씬이 이끄는 테러군의 핵심 돌격대가 되어, 1919-1920 년 니콜라옙스크-나-아무레와 사할린주 민간인 학살에 적극 참여했다'''. 1920년 여름 일본군의 맹공격으로 아무르강 하류를 떠나 블라고베쉔스크 인근에 정착한 그들은 '''언제나 그렇듯 무기를 이용해 공급 문제와 사적인 갈등을 해결했다'''. 1920 년 7 월 말, '''인민혁명군 에이헤 총사령관과 그의 정치조력자 비샤린은 병사와 군간부들 중에 '직무상 범죄자나 정치사범이 많은' 한중연대를 정리할 것'''을 명했다. (44:러시아군사문서보관소. F.185. Op.6. D.24. L.601 ) 하지만 이러한 조치는 효과를 보지 못했다. '''소비에트 군대와 정당이 교류한 서신에 따르면, 한인들을 통제하려는 시도는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 >에이헤 총사령관은 1921년 1월 러시아공산당(볼셰비키) 중앙위원회 극동국 한인부 부대원이자 조선공산당 아무르지역위원회 위원장 이반 다닐로비치 박찬은에게 조선 유격대의 군사문제를 해결하고자 2 월 치타 또는 하바롭스크에서 유격대 회의를 소집하라는 명령을 내리고, '위 문제를 해결하는데 방해가 되는 사람들은 모두 구속하고', 부대 사령관들을 해임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 (45: 상동. F.221. Op.1. D.376. L.4 ) 당시 극동국 한인부의 모든 부대원들과 [[사할린 부대]] 사령관인 김 인노켄티와 박 일리아는 '당내 활동에서 규율을 준수하지 않아' 코민테른 집행위원회 극동사무국 결정에 따라 권한을 박탈당했으며, 김과 박은 국가안보국 아무르지역지부의 조사를 받았다.(박은 '모험가인 트랴피씬'의 열성적 옹호자이자 콜차크의 방첩활동 첩보원이라는 혐의를 받았고, 러시아 군대 준위였던 김은 인민혁명군 복무를 회피한 혐의로 1920 년 이르쿠츠크에서 제 5 군대 특별부에 체포된 후 보석금을 내고 석방되었다. ) (46:러시아군사문서보관소. F.221. Op.1. D.376. L.41 ) > >최관윤을 의장으로 하고, 김관 강동유격대장 등이 참여한 가운데 1921년 3월 11일 치타에서 개최된 조선군사비상회의는 특별사할린유격부대 김 사령관과 박 군사인민위원을 파면하고, '연대 해산'을 위해 그들을 전지임시군사법원에 넘겨주기로 결정했다. 그들은 분리주의를 니콜라옙스크 중대에 도입하고, 일반병사들과 연대 지휘권 논쟁을 야기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었다. 그들은 ‘니콜라예프파 유격대원들이 행한 니콜라옙스크 한인부대 박 바실리 전 사령관의 사형을 저지하지 않았다’. 부대를 이끌고 자유시(스보보드니시)에서 시골로 이동하면서 '''김과 박은 ‘사격수들이 평화로운 러시아 농민들에게 약탈과 폭력을 저지르도록 허용했다’. 분노한 농민들은 한인 유격대의 무장해제와 한인들에 대항할 수 있도록 농민들을 무장시켜 줄 것을 요구했다.''' 또한 김과 박은 ‘니콜라예프파로 구성된 무책임한 테러리스트 단체를 만들어 병사들과 조선독립보병연대 지휘부에 패닉을 야기했다’. (47: 상동. L.51) > >무정부 상태는 결국 '''트랴피씬의 독재 하에 민간인 약탈과 학살을 일삼은 파르티잔의 규율을 무너뜨렸다'''. 1921 년 4 월 23 일 에이헤가 슈먀츠키에게 보낸 전보를 통해 인민혁명군 총사령관은 '''[[사할린 부대]]가 식량 부족과 ‘부대장의 부재’로 지역 주민들의 반감을 사 “농민들과 한인들 간에 공개적인 충돌을 야기할 것”이라고 전했다'''. 부대는 인접 지역 중 한 곳으로 옮겨질 계획이었다. 에이헤는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칼란다리시빌리에게 출발을 서두를 것을 요구했다. (48: 상동. L.62 ) 그러나 ‘할아버지’는 한달이 지나서야 출발할 수 있었다. 한편, 1921 년 5 월 8 일 [[사할린 부대]] 군간부는 한인부대 사령관으로 임명된 오하묵이 한때 대대사령관으로 ‘인민군을 휩쓸었던’ 사람이라 그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인민혁명군 총사령관에게 전했다. 요청서에 서명한 그리고리예프 부대장(전 장교, 무소속), 김 부대장 보조, 박 군사위원(전 니콜라옙스크 부대장), 최 참모총장(제 2 비행대 전 참모총장), 림 제 1 대대장, 아무 제 2 대대장, 헤자욱 제 3 대대장 및 많은 사령관들은 오하묵에 불복할 것을 선언했다. (49: 상동. L.69 ) >---- >A.G. 테플랴코프, 「네스토르 칼란다리시빌리(Nestor Kalandarishvili)(1876–1922)의 초상화: 형사범이자 모험가, 파르티잔, 붉은군대사령관 」, > >DOI: 10.31518/2618-9100-2018-1-4 >УДК: 63.3(571.51/.55/.621)94(47) > >A.G. 테플랴코프 = 테플랴코프 알렉세이 게오르기예비치 –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시베리아지부 역사연구소 선임연구원, 역사학준박사, 노보시비르스크 국립경제경영대학교 부교수. E-mail: teplyakov-alexey@rambler.ru > >원문: >Тепляков Алексей Георгиевич, 2018,「К ПОРТРЕТУ НЕСТОРА КАЛАНДАРИШВИЛИ (1876-1922): УГОЛОВНИК-АВАНТЮРИСТ, ПАРТИЗАН И КРАСНЫЙ КОМАНДИР」, Текст научной статьи по специальности «История и археология», 47~51쪽 (https://cyberleninka.ru/article/n/k-portretu-nestora-kalandarishvili-1876-1922-ugolovnik-avantyurist-partizan-i-krasnyy-komandir ) > >[[https://cafe.naver.com/booheong/194250|부흥카페 제공]], [[https://www.fmkorea.com/index.php?mid=best&document_srl=3008795647|펨코 제공]] 아래는 추가 자료들이다. 총사령관 에이헤는 1921년 4월 23일부터 이미 "농민과 [[한인]]들 간의 전면적 충돌이 발생할 수 있을 정도로 관계가 악화"되었다고 보고한다. >치타. >1921년 4월 23일 20시 >전보 >이르쿠츠크. >제5군 혁명군사호의 위원 슈먀츠키 귀하. > >치타에서 귀하와 함께 한인사할린빨치산부대에 관해 대화한 적이 있는데, '''그 부대는 자신의 활동으로 지역 농민들을 자신의 적으로 만들었습니다. 농민과 한인들 간의 전면적 충돌이 발생할 수 있을 정도로 관계가 악화되었습니다'''. 이 현상의 주된 원인은 부대의 어려운 식량 사정이며, 그것을 제거하기란 전박적 식량위기 때문에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적합한 부대장의 부재 또한 그 원인입니다. 상황 악화를 피하기 위해 부대는 다른 인접지역으로 이전될 것입니다. 상황의 정리 및 예정대로 신속한 부대 이전을 위해 칼란다리시빌리 동무의 조속한 출발을 요청합니다. > >제369호 > >총사령관 에이헤 > >---- >이완종, 2014, 『러시아문서 번역집 14』,선인, 2014, 177쪽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singlebungle1472&no=866282|원본 번역본 사진]] 현지 농민들이 한국독립군을 거부했다는 건 독립군 본인들의 보고서에도 서술되어 있다. >특별사할린빨치산부대 본부. >1921년 5월 7일 >제2군 사령관 및 정치위원 귀하. > >(……)현 시점에 부대가 식량문제로 위기상황이 있고 그 때문에 '''농민들과의 갈등이 조성되고 있습니다'''. 갈등은 수습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현 시점에서는 비록 3일간이라도 부대를 방치할 수 없습니다. 식량은 스보보드니 식량기지에도 배급지점에도 없습니다. 스바보드니 식량기지에서 수령한 200푸드의 밀가루는 스바보드니 시의 보급창에 쌓여있는데, 운송수단도 없고 '''농민의 완강한 협조 거부 때문에 각 부대로 배급할 수 없습니다.''' (……)』 > >---- >이완종, 2014, 『러시아문서 번역집 14』,선인, 2014, 93 >[[https://www.fmkorea.com/index.php?mid=best&document_srl=3008795647|펨코 재인용]] 다음은 당집회 위원들이 총사령관에게 보낸 청원이다. >당집회 위원들의 총사령관에의 청원 > >1921년 5월 13일 >총사령관 귀하 > >부탁이 있습니다. 즉각 [판독불가] 특별사할린빨치산부대에 3,000명이 있는데 3개월간 주둔하고 있습니다. '''면 주민들은 가난하며, 이들이 새로 정주한 병사 3,000명을 부양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향후 그들이 계속 주둔한다면 들판에 뿌릴 종자마저 없어질 것입니다. 부대는 탄압적 조치를 취하고 있습니다. 체포와 폭력이 자행되고 있습니다. 악화된 관계는 무장충돌의 일보직전에 있습니다. 귀하의 결정을 촉구합니다.''' > >당집회 위원 안친페로프, 데예야토프, 프로야예프 > >---- >이완종, 2014, 『러시아문서 번역집 14』,선인, 2014, 199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singlebungle1472&no=866282|원본과 번역본 사진]] 다음은 정치특사가 보낸 보고서이다. >아무르주 정치특사 야코블레프 > >블라고베센스크 제01928호 >1921년 5월 14일 >전보 >치타. 총사령관 귀하. > >창립회의 아무르 위원들이 마자노보에서 타전합니다. 마자노보 지역에서 숙영하고 있는 '''한인부대가 주민들에 대해 탄압적 조치를 취하고 있습니다. 농민들에 대해 근거 없는 체포 및 폭력을 자행'''하고 지역에 전시상태를 선포하였으며, 저녁 10시 이후 통행을 금지하여 그럼으로써 현재 아주 늦게 끝나는 농민들의 작업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귀하의 지시를 어기고 '''한인부대는 주민들에게서 계속 식량을 조달하고 있습니다. 창립회의 위원들은 부대의 즉각적 퇴거를 요청합니다. 왜냐하면 주민들과 대립이 극단적 한계에 도달하였기 때문입니다. 이에 관해 알리면서 한인부대의 즉각적 퇴거를 위한 실제적이고 단호한 조치를 취해주실 것을 간절히 청원합니다'''. 본인에게 타전하시기 바랍니다. 제178호. > >아무르주 정치특사 야코블레프. >---- >이완종, 2014, 『러시아문서 번역집 14』,선인, 2014, 198)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singlebungle1472&no=866282|원본과 번역본 사진]] 다음은 제2군 사령관 파블로프가 한국독립군과 지역주민 사이의 관계를 보고한 보고서다. >독립사할린빨치산부대가 배치된 곳의 '''지역주민들은 부대에 대해 비우호적인 태도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부대 철수를 청원하고 있습니다'''. 정치적 성격 및 내부적 성격의 문제가 악화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한인부대 문제의 조속한 해결을 요청합니다. 다른 지역으로의 부대 이동이 필요합니다. 게다가 '''문제가 악화되면 농민과 한인부대 간의 전면적 투쟁으로 번질 수 있습니다'''. 제 652호 > >제2군 사령관 파블로프 >정치위원 멜니코프 >참모장 시코미 >암호해독: [판독불가] > >---- >이완종, 2014, 『러시아문서 번역집 14』,선인, 2014, 166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singlebungle1472&no=866282|원본과 번역본 사진]] 총사령관은 제2군 사령관에게 한국독립군이 일반 주민에게 저지르는 행위에 대해 책임지고 해결하라고 명령했다. >치타. 1921년 5월 14일. >제2군 사령관 귀하. >사본은 제12여단 정치위원에게. > >'''특별[[사할린부대]] 한인 빨치산들이 일반 주민들에 자행하는 난동과 강압에 대한 불평등이 또다시 본인에게 들어오고 있습니다.''' 빨치산들은 생존을 위한 정상적 조건 보장이라는 뜻에서 '''주민들이 그들에게 나타내는 무관심한 태도''' 때문에 그런 행위를 한다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귀하에게 직접 이 일에 대한 감독 책임을 부과합니다. 동시에 혁명 질서의 유지와 감독을 위해 부대에 대리인을 파견하십시오. 귀하의 조치들로 인해 본인이 부대에 대한 불평을 듣는 일로부터 벗어나게 되기를 바랍니다. > >총사령관 A. 라핀』 > >---- >이완종, 2014, 『러시아문서 번역집 14』,선인, 2014, 195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singlebungle1472&no=866282|원본과 번역본 사진]] 위의 설명된 논문과 증거들은 일반적인 상식에서 벗어나는 게 없다시피하다. 자체 식량이나 둔전 없이 이곳으로 온 독립군이 현지 간부들과 농민들과 비우호적인 상태로 현지에 계속 주둔한다면 당연히 굶주림에 의한 약탈과 이에 따른 갈등이 쌓일 수밖에 없다. 위의 논문들과 증거들을 부정한 가설을 말이 되게 제시하기도 불가능하다. 현지 간부들과 농민들이 비협조하는데 독립군이 약탈을 안 하면 러시아 극동에서 어떻게 식량을 조달하는가? 일본군이 점령한 간도에서 러시아까지 식량을 운반하는가? 증거가 없어도 독립군의 약탈이 아니면 설명이 안 되는데 논문과 증거까지 있으니 부정할 만한 현실적인 가설도 없다. 보급이 안 되는 군인들이 벌이는 짓은 어디나 다르지 않은데 아예 타국에서 타국민과 있으면, 특히 약탈이 아니라면 식량 조달을 설명할 수 없다. [[십자군 전쟁]]부터 신념은 있는데 보급은 없는 민병대가 어찌되는지 보여준다. [[청산리 전투]] 참가자도 거의 유사하게 증언했다. >자유시참변에 원인 >독립군들은 청산리전쟁 이후 만주에는 접촉할 곳이 없다. 왜들은 만주를 자유로 출몰하는 판이지라 동포들을 무분별 학살, 온갖 만행을 하는 판이라 어찌할 수 없이 러시아 땅으로 들어온 것이다. 동영현에 집결한 독립군을 통합하여 독립군 총사령부를 설정하고 홍범도 씨를 총사령관으로, 이청천 씨를 부사령관으로 선출하여 독립군을 통솔하였다.(중략)각 단체의 수령들은 배척을 당하고 군인들은 자유시로 들어가게 되었는데 '''박일리야는 홍범도, 이청천도 배제하려고 한다. 홍범도 씨와 이청천 씨는 책임상 자유시까지 따라올 수밖에 없다. 그러나 감시 인물이 되었던 것이다. 그럼으로 홍범도, 이청천은 탈출하여 오하묵 부대가 있는 자유시로 갔다.'''(중략)박일리야는 합하는 날이 되면 온 세력을 넘겨주게 된다. 그럼으로 합하지 않으려고 버티고 있으나 '''1천여 명 군대에 군수물자를 보급받지 못하니 농촌으로 돌아다니다 보니 농민의 원성이 자자할 뿐만 아니라 농촌도 양식이 다 떨어진 형편이다.''' >---- >"청산리대첩 참가자 이우석 친필 수기", 48-51면(51-54), [[독립기념관]] (자료번호 1-014724-000) [[https://search.i815.or.kr/sojang/read.do?isTotalSearch=Y&book=&adminId=1-014724-000|#]] 상황이 이처럼 악화되자 극동 공화국에서는 [[네스토르 알렉산드로비치 칼란다리쉬빌리|칼란다리쉬빌리]][* 아나키스트 성향이 있었다고 하며 러시아 내전에서 적군 편에서 싸운 지휘관이다.]를 파견해서 부대해산을 명령했다. >위임장1 > >극동 공화국 전군 총사령관. >1921년 5월 27일. >제574호. 극동군 > >위임장 > >이것의 제시인은 극동 공화국 전영토에서 혁명적 한인무장세력의 실제 사령관인 네스토르 알렉산드로비치 칼란다리쉬빌리이다. >그에게 위임된 사항은 다음과 같다: >1) 현존 빨치산 및 기타 한인부대들, 군사조직과 단체를 해산하고 새로운 부대를 만든다; >2) 군사적 목적으로 한인 혁명무장세력들을 독자적으로 이용한다; >3) 그에게 예속된 부대 간부들을 교체, 파면, 해직, 임명한다; >4) 부대 간부들에게 훈령, 지시, 명령을 내리고 위임을 한다. > >본인이 도장을 찍고 확인서명함으로써 진본임을 보증한다. > >극동 공화국 전군 총사령관 A. 라핀 >---- >이완종, 2014, 『러시아문서 번역집 14』,선인, 2014, 207.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singlebungle1472&no=866282|원본과 번역본 사진]] 도착한 칼란다리쉬빌리는 1921년 5월 자유대대 및 현지 [[극동 공화국 인민혁명군]] 부대의 지휘관으로 임명되었으며 [[사할린부대]]가 자신에게 복종하지 않는다고 보고했다. >다음 날, 슈먀츠키는 새로 임명된 라핀 인민혁명군 총사령관과 회담을 진행하면서 조선혁명군들의 성공적인 단합을 위해서는 “가장 야비한 적들을 쓸어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총사령관은 이에 동의하며, “숙청은 진행될 것이다. 다만, 무단으로 소집된 군사협의회의 영향을 받은 부대에서 발생한 일부 불미스러운 일들은 해독제로서 어느 정도는 허용하고, 그러한 영향이 당신에게서 오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칼란다리시빌리를 조속히 파견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본다”고 대답했다. (50:상동. L.70 ) 그리고 5월 10일 슈먀츠키는 라핀에게 보내는 서신에서 칼란다리시빌리와 한인부대 혁명위원회의 임무는 “범죄적 민중선동을 일삼는 박 I와 한인부대의 다른 모험가들을 어떻게 징계할 지, 또는 (모두) 쓸데없으니 (그들을) 풀어주어야 할지'를 결정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슈먀츠키는 ‘할아버지’가 감당해야 할 일이며, 라핀은 조만간 특별[[사할린부대]] 유격대원들에 대한 주민들의 새로운 불만들을 처리해야 할 것이라며 확신에 차 말했다. (51: 상동. L.71, 76 ) > >칼란다리시빌리는 조선군사혁명협의회 의장과 한인부대 총사령관 직에 임명되어(하묵은 부총사령관이 되었다) 5 월 19 일 자신의 참모들과 함께 이르쿠츠크를 떠났다. 슈먀츠키는 그에게 광범위한 임무를 부여했다: “칼란다리시빌리의 임무는 중국 마적떼('홍후즈')를 동원하여 조속히 완충지대에서 벗어나 한국으로 진군하는 것이다. 이들 조직의 관리는 중국공산당의 조력을 받게 될 오홀라에게 맡겨졌다. 홍후즈 마적떼의 임무는 한인부대들을 위해 완충지대를 벗어나 경계를 벗어날 때 최소한 그 후방을 지키는 것이다.” 이러한 간섭주의 작전은 운게른 부대와의 전투 맥락에서 계획되었다: 당시 슈먀츠키는 운게른과의 전투를 위해 500 여명의 병사로 구성된 쉐틴킨의 부대를 몽골로 보냈다. (52: 러시아군사문서보관소. F.221. Op.1. D.376. L.86 ) > >라핀 총사령관은 1921년 5월 21일 크라스노쇼코프 극동 공화국 대통령에게 자유시 아래 위치한 크라스노야로보와 마자노보에 한인유격대원 1500 여명이 주둔해 있고, 그 지휘부는 한국에서 활동하다 일본군에 의해 격파된 후 극동 공화국으로 떠난 일본 및 중국군의 전 한인장교들과 부대장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들은 '''코민테른 극동사무국이 임명한 지도자들을 인정하지도, 복종하지도 않으려 한다고 전했다'''. 4월에서 5월까지 크로스노야로보 부대는 이르쿠츠크에서 온 한인연대로 보강되었다(500 여명이 넘는 병력, 러시아군대 한인 장교로 구성된 군간부들은 '연대 전체와 마찬가지로 정치적으로 매우 신뢰할만 했다'.) 라핀은 이 연대로 [[사할린 부대]]를 보강함으로써 나머지 부대의 '심리적 요새'가 될 것이라고 기록했다. 그러나 총사령관으로부터 강력한 체포권을 부여받은 칼란다리시빌리는 1921년 6월 9일 '한인부대가 (그에게) 전혀 복종하지 않는다'고 자유시에서 전해왔다. (53: 상동. L.88, 95 ) >---- >A.G. 테플랴코프, 「네스토르 칼란다리시빌리(Nestor Kalandarishvili)(1876–1922)의 초상화: 형사범이자 모험가, 파르티잔, 붉은군대사령관 」, > >DOI: 10.31518/2618-9100-2018-1-4 >УДК: 63.3(571.51/.55/.621)94(47) > >A.G. 테플랴코프 = 테플랴코프 알렉세이 게오르기예비치 –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시베리아지부 역사연구소 선임연구원, 역사학준박사, 노보시비르스크 국립경제경영대학교 부교수. E-mail: teplyakov-alexey@rambler.ru > >원문: >Тепляков Алексей Георгиевич, 2018,「К ПОРТРЕТУ НЕСТОРА КАЛАНДАРИШВИЛИ (1876-1922): УГОЛОВНИК-АВАНТЮРИСТ, ПАРТИЗАН И КРАСНЫЙ КОМАНДИР」, Текст научной статьи по специальности «История и археология», 47~51쪽 (https://cyberleninka.ru/article/n/k-portretu-nestora-kalandarishvili-1876-1922-ugolovnik-avantyurist-partizan-i-krasnyy-komandir ) > >[[https://cafe.naver.com/booheong/194250|부흥카페 제공]], [[https://www.fmkorea.com/index.php?mid=best&document_srl=3008795647|펨코 제공]] 사실 농민 약탈 문제가 아니더라도 이미 자유대대로 통합하라고 지침이 내려온 상황인데 [[사할린부대]]가 계속 버티는 것은 [[레닌]]의 [[모스크바]] 정부와 달리 현지 극동 공화국의 지도부, 관료, 군인, 농민 입장에서는 불편했을 것이다. 본질적으로 [[독립군]]은 민간인 무장단체이며 타국에선 위험한 집단인데 타국에서 통제를 무시한다면 해당 지역에서 가만히 두는 게 오히려 이상하고 생각해 보면 무장해제 거부가 황당한 행위다. 남의 [[땅]]에 들어가는데 무장 그대로 하고 지휘는 받기 싫다고 하는 것이니 그 나라 입장에선 분노하지 않는 게 이상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